원효대사: 한국 철학의 첫 새벽을 열다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무애행’을 펼친 원효대사의 삶과 사상을 서양인들에게 소개함을 통해
깨달음과 자유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삶의 비전을 제시한다.
깨달음과 자유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삶의 비전을 제시한다.
<프로젝트 진행상황>
한국은 6천 년 역사를 가진 오랜 전통이 있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에게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 속국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십여 년간 한류가 세계 각국에 새로운 팬덤을 만들고 K-POP이 글로벌 팬덤을 확보했지만 아직도 한국의 고유 사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의 유교사상과 공자의 이름은 서양에도 널리 알려지고, 많은 서양 지식인들의 책장엔 어김없이 노자의 ‘도덕경’이 꽂혀 있다. 또한, 일본의 ZEN 사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있는 수행철학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사에는 그런 영향력을 가진 철학자가 없는 것일까?
원효의 <일체유심조>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만큼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도록 이끌어주는 가르침이다. 또한, 원효의 <무애행>은 서양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참자유의 삶’으로, 서양철학자들이 도달하지 못한 실천행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나는 춤과 노래로 민중을 위로하고 깨달음의 길을 열어준 원효의 삶과 가르침을 세상에 알려, 원효를 공자, 노자와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철학자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정치적 혼란, 경제적 위기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이 자유와 박애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의 본질을 돌아 볼 수 있는 영감을 제시하고 싶었다. 2013년 원효대사 다큐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작품에 착수했지만 펀딩이 원활하지 않아, 일을 하면서 자금과 시간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조금씩 촬영을 하면서 장기간 제작을 하게 되었다. 2018년에 TV 방송 프로그램 '원효를 만나다'를 완성해, 부처님오신날 특집방송으로 부산MBC와 서울MBC를 통해 상영을 했다. 그 후,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함께 원효순례를 기획해서 원효의 고향과 활동지들을 방문해 원효의 행적을 알리고 사상을 되새기는 기회들을 만들어 나갔다.
현재는 촬영한 내용들을 단편시리즈 '원효와 나 (Wonhyo & Me)'로 재가공해 유튜브(KoreanPhilosopher)에 올리고 있다. 거의 7년의 촬영기간 동안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각각 조명하며 원효대사의 삶과 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되짚어보고자 함이다.
원효의 <일체유심조>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만큼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도록 이끌어주는 가르침이다. 또한, 원효의 <무애행>은 서양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참자유의 삶’으로, 서양철학자들이 도달하지 못한 실천행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나는 춤과 노래로 민중을 위로하고 깨달음의 길을 열어준 원효의 삶과 가르침을 세상에 알려, 원효를 공자, 노자와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철학자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정치적 혼란, 경제적 위기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이 자유와 박애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의 본질을 돌아 볼 수 있는 영감을 제시하고 싶었다. 2013년 원효대사 다큐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작품에 착수했지만 펀딩이 원활하지 않아, 일을 하면서 자금과 시간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조금씩 촬영을 하면서 장기간 제작을 하게 되었다. 2018년에 TV 방송 프로그램 '원효를 만나다'를 완성해, 부처님오신날 특집방송으로 부산MBC와 서울MBC를 통해 상영을 했다. 그 후,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함께 원효순례를 기획해서 원효의 고향과 활동지들을 방문해 원효의 행적을 알리고 사상을 되새기는 기회들을 만들어 나갔다.
현재는 촬영한 내용들을 단편시리즈 '원효와 나 (Wonhyo & Me)'로 재가공해 유튜브(KoreanPhilosopher)에 올리고 있다. 거의 7년의 촬영기간 동안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각각 조명하며 원효대사의 삶과 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되짚어보고자 함이다.
<TV 다큐멘터리 '원효를 만나다' - 내용>
국경을 초월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무수한 정보.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온라인 매체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면서 ‘너 자신을 알라’란 철학적 개념은 더이상 한가한 사색의 영역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유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나를 알기 위한 첫 걸음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가를 깨닫는데서 시작한다고 믿는 감독은, 그 본질을 너무나 명확하게 ‘일체유심조’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한 한국의 사상가 원효대사를 소개해 깨달음과 자유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한다.
본 다큐멘터리는 연대기적 전기의 형식으로, 원효대사의 출생부터 깨달음에 도달한 과정, 깨달음의 실체인 ‘일체유심조’와 ‘일심사상,’ 깨달음 이후에 펼친 무애행을 조망하고, 그와 관련된 설화와 설화가 시사하는 바 등을 함께 살펴본다.
원효대사는 삼국환란의 시대에 신라에서 태어나 통일신라의 초엽까지 활동했다. 당시 중국과 한반도의 상황, 당나라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계를 짚어보고 원효대사의 고향 경산으로 향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설화와 많이 닮아 있는 원효대사의 탄생설화는 집안 환경과 출생배경을 담고있다.. 골품제도라는 철저한 신분사회의 6두품 집안에서 태어나 ‘설 서당’이란 이름을 받은 아이는 남다른 총명함으로 특정한 스승의 도움없이 스스로 학문을 깨우쳤다. 10대 초반에 책을 써서 학자들과 교류할 정도로 필력이 뛰어났고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15세의 나이에, 출세를 꿈꾸는 대부분의 신라 청년들이 그랬듯, 화랑에 입단했다.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동료들과 호연지기를 다지며 수련에 전념했지만 첫 전투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전쟁의 현실에 눈을 떴다. 자신이 동료의 죽음을 아파하듯이 적들도 그들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무기를 들 수 없었다. 결국 죽음을 넘어선 실상을 찾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고, 스스로 법명을 ‘원효’라 지었다. 원효란 첫 새벽. 즉 무지의 어둠을 깨치는 빛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원효가 입문한 곳은 당시 신라의 국사인 황룡사. 경주 서라벌의 중심에서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고 있던 사찰이었다. 성골이 왕이 되던 시기였고, 진골출신은 불교에 귀의해 국가의 녹을 받는 국사가 되어 호국불교를 이끌었다. 화려한 사찰의 위용에 회의를 느꼈을까. 원효는 황룡사를 나와 전국 방방곡곡 돌아 다녔고, 산 속의 동굴이나 바위에 앉아 깊은 선정에 들기도 하고, 작은 산사에 주석하며 수 많은 경전을 섭렵하고 주석서를 쓰기 시작했다. 신라의 백제합병 이후,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모델이 된 당시 유명한 현장법사가 서역의 경전을 들고 당나라로 돌아와 번역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효는 각별한 도반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났다. 그 도당유학의 여정에서 비를 만나 동굴에서 잠이 들었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이미 진리를 깨우쳤기에 당나라로 공부하러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원효는 경주로 돌아가, 분황사에 주석하며 수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 그가 쓴 200여 권의 책들은 중국과 일본, 인도까지 전해지고, 수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 교토의 고산사에는 원효와 의상을 존경하고 흠모한 화엄승 ‘묘에’가 제작을 주도한 ‘화엄연기’가 있다. 중국의 송고승전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원효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전기이다.
저술활동에 전념하던 어느 날, 화엄경의 한 구절을 쓰다가, 돌연 붓을 꺾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문자에서 소외되어 있던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일상에 뛰어들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전파하며 고통에 찌든 민중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또한,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라고 스스로를 낮추고 머리를 길렀으며, 조롱박 모양의 악기를 두드리며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란 노래를 부르며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삶과 죽음이란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노래했다. ‘무애행’으로 알려진 원효대사의 삶의 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고, 그의 ‘일체유심조,’ ‘일심’ 사상은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와 ‘타인’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일상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좌절, 의문과 절망 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본 다큐멘터리는 연대기적 전기의 형식으로, 원효대사의 출생부터 깨달음에 도달한 과정, 깨달음의 실체인 ‘일체유심조’와 ‘일심사상,’ 깨달음 이후에 펼친 무애행을 조망하고, 그와 관련된 설화와 설화가 시사하는 바 등을 함께 살펴본다.
원효대사는 삼국환란의 시대에 신라에서 태어나 통일신라의 초엽까지 활동했다. 당시 중국과 한반도의 상황, 당나라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계를 짚어보고 원효대사의 고향 경산으로 향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설화와 많이 닮아 있는 원효대사의 탄생설화는 집안 환경과 출생배경을 담고있다.. 골품제도라는 철저한 신분사회의 6두품 집안에서 태어나 ‘설 서당’이란 이름을 받은 아이는 남다른 총명함으로 특정한 스승의 도움없이 스스로 학문을 깨우쳤다. 10대 초반에 책을 써서 학자들과 교류할 정도로 필력이 뛰어났고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15세의 나이에, 출세를 꿈꾸는 대부분의 신라 청년들이 그랬듯, 화랑에 입단했다.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동료들과 호연지기를 다지며 수련에 전념했지만 첫 전투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전쟁의 현실에 눈을 떴다. 자신이 동료의 죽음을 아파하듯이 적들도 그들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무기를 들 수 없었다. 결국 죽음을 넘어선 실상을 찾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고, 스스로 법명을 ‘원효’라 지었다. 원효란 첫 새벽. 즉 무지의 어둠을 깨치는 빛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원효가 입문한 곳은 당시 신라의 국사인 황룡사. 경주 서라벌의 중심에서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고 있던 사찰이었다. 성골이 왕이 되던 시기였고, 진골출신은 불교에 귀의해 국가의 녹을 받는 국사가 되어 호국불교를 이끌었다. 화려한 사찰의 위용에 회의를 느꼈을까. 원효는 황룡사를 나와 전국 방방곡곡 돌아 다녔고, 산 속의 동굴이나 바위에 앉아 깊은 선정에 들기도 하고, 작은 산사에 주석하며 수 많은 경전을 섭렵하고 주석서를 쓰기 시작했다. 신라의 백제합병 이후,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모델이 된 당시 유명한 현장법사가 서역의 경전을 들고 당나라로 돌아와 번역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효는 각별한 도반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났다. 그 도당유학의 여정에서 비를 만나 동굴에서 잠이 들었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이미 진리를 깨우쳤기에 당나라로 공부하러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원효는 경주로 돌아가, 분황사에 주석하며 수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 그가 쓴 200여 권의 책들은 중국과 일본, 인도까지 전해지고, 수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 교토의 고산사에는 원효와 의상을 존경하고 흠모한 화엄승 ‘묘에’가 제작을 주도한 ‘화엄연기’가 있다. 중국의 송고승전에 기록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원효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전기이다.
저술활동에 전념하던 어느 날, 화엄경의 한 구절을 쓰다가, 돌연 붓을 꺾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문자에서 소외되어 있던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일상에 뛰어들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전파하며 고통에 찌든 민중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또한,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라고 스스로를 낮추고 머리를 길렀으며, 조롱박 모양의 악기를 두드리며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란 노래를 부르며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삶과 죽음이란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노래했다. ‘무애행’으로 알려진 원효대사의 삶의 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고, 그의 ‘일체유심조,’ ‘일심’ 사상은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와 ‘타인’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일상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좌절, 의문과 절망 등을 풀어나갈 수 있는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 학술자문 >
로버트 버스웰 박사 (Dr. Robert E. Buswell) – UCLA 대학 교수
미국내 대표적 불교학자이자 한국학자로 명성을 쌓았다. 현재 UCLA 대학 불교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동대학 내 불교학 센터 및 한국학 센터 설립자이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장직을 역임했으며 서구세계에 한국 불교학을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만해대상을 수상했다. 불교에 관한 수많은 논문 및 책을 편찬했으며, 특히 원효대사의 모든 저술을 영어로 완역하는 프로젝트의 주도자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뱍태원 교수 –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원효, 의상, 지눌을 중심으로 한국고대불교철학을 탐구하고 있다. ‘원효사상연구’ ‘대승기신론사상연구’ ‘원효 – 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 등 원효에 관한 저서를 다수 출판했으며 2011년 제 2회 원효학술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 시작, 2020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원효전집 번역과 종합해제’ 사업 진행을 책임지고 있다.
로버트 버스웰 박사 (Dr. Robert E. Buswell) – UCLA 대학 교수
미국내 대표적 불교학자이자 한국학자로 명성을 쌓았다. 현재 UCLA 대학 불교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동대학 내 불교학 센터 및 한국학 센터 설립자이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장직을 역임했으며 서구세계에 한국 불교학을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만해대상을 수상했다. 불교에 관한 수많은 논문 및 책을 편찬했으며, 특히 원효대사의 모든 저술을 영어로 완역하는 프로젝트의 주도자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뱍태원 교수 –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원효, 의상, 지눌을 중심으로 한국고대불교철학을 탐구하고 있다. ‘원효사상연구’ ‘대승기신론사상연구’ ‘원효 – 하나로 만나는 길을 열다’ 등 원효에 관한 저서를 다수 출판했으며 2011년 제 2회 원효학술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 시작, 2020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원효전집 번역과 종합해제’ 사업 진행을 책임지고 있다.
<지원>
경기관광공사 서울영상위원회 영화창작공간 2013년 시나리오 작가존 입주지원 작품 < 중요 후원자분들 > 대한불교 조계종 아름다운 동행 대한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 홍법문화재단 정우스님 도법스님 정목스님 아미타파 카페 회원 여러분 법왕정사 청견스님 미래불공덕회 양인순 이은주 유도현 한상용 KOPLA |
< 그 외 텀블벅 후원자분들 > 천은숙 무량광 남상옥 박이숙 김홍중 보광월 김행진 조유숙 강임필 이량비 김갑열 이상옥 한남경 정만월 김준배 최용수 백현옥 능인해 정청현 최광수 정웅기 홍사훈 강혜주 다유 김충훈 신순회 백승권 배금향 강호부 김성진 이상선 김미숙 노동환 감로화 윤옥희 김재명 민귀남 이민강 유정해원명심 신혜란 김기영 박수목 정대희 김범섭 김태희 이용건 양다정 조정희 김정애 박상욱 최금희 자재 유창재 기설학인 원현경 권영진 황대식 김미정 서지현 박민정 허태선 설동조 한창석 백진욱 |